아아, 모종의 거시기로 빚(?)을 좀 지워둔 게 있어서. 주말에 친구 하나가 자취방에 잠시 내려올 때 뜯어먹었다.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크림소스 크림소스 노래를 부르고 있던 터라 미스터피자라도 찾아가서 피자 시켜두고 까르보나라 시켜서 먹을까... 하던 게 막상 때 되니 시내에서 미스터피자 찾기가 귀찮아져서. 그냥 눈에 보이는 프레스코로 직행.
까르보나라랑 해물스파게티, 화덕 피자를 간단하게 주문했다. 언제나처럼 화질 안 좋고 초점 안 맞는 폰카이니만큼 사진에 큰 기대는 하지 마시고.
에피타이져로 주는 빵. 보통 올리브오일에 발사믹 식초라도 띄워서 곁들여 주는 게 보통이 아닌가-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딴 거 없더라. 뭐 스파게티 소스가 넉넉하게 나올테니 찍어먹으면 되지만서도. 그럼에도 빵을 남겼던 이유가 뒤에 나온다.
내가 시킨 까르보나라. 크림소스에 베이컨이라는 무난한 고소함이 좋다. 사실 크림소스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만 해월리나 오천리 마트에 뭘 바라겠는가.
친구가 시킨 해물 스파게티. 주로 들어 있는 건 문어. 기본 베이스는 토마토 소스에 약간 매콤했던가 어쨌던가(무성의).
이게 그 살면서 말로만 들었던 화덕 피자라는 놈이다- 라는 기분으로 봤다. 빵은 확실히 보통 생각하는 피자보다 훨씬 얇고 바삭바삭하며, 그만큼 치즈 층도 얇고 부실하다(...).
바삭바삭하니 맛은 괜찮았는데 역시 내 입에는 또띠아에 토마토소스 발라 구운 것처럼 느껴져서. 친구는 이정도면 담백해서 좋다- 라고 평하는 걸 보면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너무 헤비한 맛을 추구해온 건 아닐지. 그러고보니 8조각 중 내가 먹은 세 조각엔 모두 브로콜리가 올라 있었는데 무언가의 알 수 없는 조작이 가해진 음모를 느꼈다나.
입구 들어갈 때 예전에도 프레스코 한 번 가 봤다는 친구가 말하길 꽤 미묘한 곳이었다고 하고, 주문한 스파게티가 나와서 각자 맛을 볼 때도 "내가 알고 있는 프레스코 그대로의 맛이라 좀 슬퍼" 라고 할 때쯤엔 나도 그 미묘함을 알 수 있겠더라. 내 까르보나라고 친구의 해물 스파게티고 싱겁기 이전에 밍밍하고, 담백하기 이전에 묽다. 어느 정도냐 하면 소스라 쓰고 국물이라 읽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. 그나마 내 까르보나라가 크림소스의 천성(?)이라고 해야 할까, 기본 스탯이 있는 바람에 그나마 먹을 만하다면 해물 스파게티는 그 밍밍함과 묽음이 극에 달해서 부조화의 끝을 달린다. 듬뿍 들어있던 문어는 꼬들꼬들하니 좋았지만 그나마 밑간도 안 되어 있는 게 소스와는 어찌 그리도 따로 노는지.
사실 맛 자체보다 다른 쪽으로 분위기라고 할까 그런 쪽에 적당히 만족을 한 지라,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돈 쓴 게 아니라 미묘하다 싶어도 크게 와닿는 불만이야 없었다지만 제 지갑 비운 친구놈은 어떨지'ㅂ' ...라기보다도 다시는 "프레스코 안 온다, 혹여 여자친구가 프레스코 빠라도 여긴 안 온다", 라고 엄포를 놨었지. 어쨌든 헤비한 거 좋아하는 내 싸굴싸굴한 입맛엔 까르보나라도 피자헛 쪽이 마음에 들었고, 피자 같은 경우 담백하고 또 다른 맛이 있긴 하지만 여기보다 잘하는 화덕피자 전문점도 많을 테니 굳이 피자 맛보러 프레스코 찾을 필요는 없을 듯.
뭐 다른 지역 프레스코는 어떨지 모르긴 하지. 이천시 시내가 원체 피자헛이고 미소야고 그모양 그따구니 말이쟤.
아아, 근데 실컷 이렇다 저렇다 불만만 늘어놓곤 이런 말해도 설득력 없겠지만. 뭐, 저는 만족했습니다'ㅂ' 잘 먹었어요 |